멈춘 전화
환하게 빛나는 휴대전화 화면 위로, 익숙한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방금 전 마무리된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흘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주머니 속에서 꺼내든 휴대폰이었고,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찾아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손가락이 멈칫했다
새로운 소식이 생길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었던, 언제나 내 편에서 가장 기뻐해 줄 얼굴이 떠올라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던 그 순간, 번호가 보임과 동시에 검지 손가락은 허공에서 아득히 멈추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발신 버튼을 누르려던 그 동작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심장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처럼 그제야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몇 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과 작별했던 두 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그 찰나의 순간 동안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끔찍한 감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손안에 들린 스마트폰의 차가운 금속성 재질이 순간적으로 더 얼음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방금까지 느껴졌던 작은 성취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마치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기분만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습니다.
그 번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도 휴대폰 연락처 목록에서 부모님의 이름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지우개로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듯 그 이름을 지워버리면, 마치 그분들이 존재했던 모든 시간과 기억마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연락처 목록을 위아래로 스크롤하다가, 불쑥 그 이름 앞에서 멈춰 서기도 했습니다. 마치 살아계신 것처럼, 언제든 전화를 걸면 환한 목소리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만 같은 착각에 잠시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크린에 비친 익숙한 이름과 번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손가락은 저절로 그 이름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조용히 화면을 잠그고 휴대폰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이름은 이제 단순한 연락처가 아니라,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의 흔적이자 내가 여전히 붙잡고 싶은 과거의 한 조각처럼 느껴졌습니다.
여전히 가장 먼저였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주변에서는 모든 것이 차츰 익숙해지고 평온을 찾아가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좋은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오랫동안 공들여왔던 공모전에서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받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순간적으로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쁨이 솟아올랐습니다. 그 즉시 습관처럼 휴대폰을 찾아 들었고, 가장 먼저 연락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내 목소리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면, 세상 누구보다도 크게 기뻐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줄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연락처 목록을 다 찾아보기도 전에, 다시금 그 멈칫하는 순간이 찾아왔고, 손가락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춰 섰습니다. 그 어떤 기쁨도 슬픔도 이제는 더 이상 전달할 수 없다는 먹먹한 현실이 한 순간에 나의 기쁨을 덮어버렸습니다.
혼자였다
그 순간, 휴대폰의 밝은 화면은 눈부시게 빛났지만, 정작 나의 세상은 한없이 어둡고 고요해졌습니다. 기쁜 소식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텅 빈 마음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손은 힘없이 무릎 위로 떨어졌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창밖을 응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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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최윤아 | 에세이 작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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