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잊고 있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좋은 일이 생겼는데 전화를 하려다 멈췄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들었다 — 손가락이 멈췄다 — 그제야 생각났다


그날은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별거 아니었다. 그냥 오후에 일이 잘 풀렸고, 하늘이 유난히 맑았고, 퇴근길에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왔다. 그런 날이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이 들뜨는 날.

그 순간 나는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연락처를 열었다. 손가락이 이미 알고 있었다. 누를 번호를. 좋은 일 있으면 제일 먼저 전화하던 곳. 별것도 아닌 얘기를 꺼내도 한참을 들어주던 목소리.

그러다 멈췄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그대로 굳었다. 1초였는지 10초였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잠깐 이상하게 흘렀다.

없는 번호였다.

아직 연락처에 이름이 있다. 지운 기억이 없으니 그냥 있는 거다. 가끔 목록을 내리다가 그 이름을 지나친다. 대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있다는 걸 잊고 살 때가 더 많다.

그날은 손가락이 먼저 알고 있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그냥 걸었다. 좋았던 기분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냥 조용해졌다. 기분이 좋은 채로 조용해지는 게 가능하다는 걸 그날 알았다.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 뉴스를 봤다. 잠자리에 들었다.

자려고 눈을 감는데 갑자기 생각났다. 그 목소리가 뭐라고 했을 것 같은지. 아마 그랬겠지. 잘됐네, 잘됐어. 그게 전부였을 거다. 길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근데 그 짧은 말이 듣고 싶었던 거였다.

지금도 좋은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전화는 못 하지만.

✍️ 글쓴이: 박건우 | 칼럼니스트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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