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하나가 뭘 해결해주겠냐고”
시험 망친 아이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위로하려다 — 말문이 막혔다 — 그냥 옆에 있기로 했다
아이가 성적표를 받아온 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하려고 했는데 할 수가 없었다. 위로의 말을 준비했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연습도 했다. “괜찮아, 다음엔 잘 할 수 있어.” “이번 한 번이 전부가 아니야.” 그런데 막상 아이 얼굴을 보는 순간, 그 말들이 전부 목구멍에서 걸려버렸다.
뭐라고 해줘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과자 하나 사다 방문 앞에 두고 나왔다.
편의점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고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맞는 건가.’ 과자 하나가 뭘 해결해주겠냐고. 그래도 그게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방문 앞에 살짝 내려놓고 발소리를 죽이며 돌아서는데, 그 짧은 복도가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부모가 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아이가 실패하면 대신 실패해줄 수도 없고.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데, 그 지켜보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느낌.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되고, 안 괜찮다고 하면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이게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괜찮다고 하면 아이 마음속 허탈함을 덮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안 괜찮다고 하면, 아이가 이미 받고 있을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꼴이 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 나도 그 나이 때 시험을 망친 적이 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학교 앞 분식집에서 혼자 떡볶이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부모님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혼났는지, 위로받았는지. 그냥 그 분식집 창문으로 보이던 가로등 불빛만 기억난다. 아이도 그럴지 모르겠다.
그날 저녁, 나는 그냥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TV도 안 켜고. 아이 방문은 닫혀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가 나와서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고, 소파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우리 둘 다 한동안 아무 말을 안 했다. 그러다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사실 수학이 제일 열심히 했는데.” 자랑이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다. 나는 그냥 “그랬어?” 하고 받았다. 그것뿐이었다.
근데 그게 시작이었다. 아이는 그날 꽤 오래 얘기했다. 어디서 막혔는지, 뭐가 억울한지, 다음엔 어떻게 해볼 것 같은지. 나는 거의 듣기만 했다.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었더니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중에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 나는 혼자 생각했다. 내가 처음부터 뭔가 말을 했으면 이 대화가 시작됐을까. 아마 안 됐을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었던 거다.
아이가 먼저 나왔으니까.
✍️ 글쓴이: 이수현 | 에세이스트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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