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전화벨

엄마의 전화벨

오전 열한 시, 식탁 위 휴대폰 화면에 엄마의 이름 세 글자가 뚜렷하게 떠올랐다. 나는 잠시 망설이던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화면 위로 움직여 전화를 받으며, 입안의 뜨거운 밥알을 겨우 삼켰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왔고, 그것은 내 일상에 스며든 고유한 배경음악처럼 느껴졌다.

하루 두 번의 안부

밥은 먹었는지,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으니 옷은 따뜻하게 입었는지, 그것이 늘 엄마의 변함없는 첫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이었다. 길어야 삼 분을 넘기지 않는 짧은 대화가 하루에 두 번, 어김없이 오전과 오후에 반복되었다. 나는 "응, 먹었지", "네, 따뜻하게 입었어요" 같은 짧은 대답들을 건네며, 동시에 눈앞의 서류를 넘기거나 설거지를 마저 하고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특별한 기대 없이 그저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듯 허공에 흩어지는 말들이었다. 통화가 끝나고 나면 왠지 모를 옅은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남았지만, 이내 다른 일로 흐려지곤 했다.

바쁨을 알리는 문자

어느 날 오후, 바쁜 회의 도중에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화면 속 엄마의 이름 세 글자를 흘긋 본 나는, 전화를 받으며 초조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지금 회의 중이라 바빠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엄마는 짧게 "그래" 하고는 통화가 종료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한참 뒤, 밀린 업무를 처리하던 중 휴대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엄마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에는 짧고 간결한 몇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래 바쁘겠지." 나는 그 문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특별한 내용도 감정도 읽히지 않는 단출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배어 있는 듯했다. 나의 바쁨을 이해하면서도 혼자 남겨진 듯한 쓸쓸함이 느껴지는 메시지였다.

미뤄진 내일

그 문자를 보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두 마디라도 더 나눌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아니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저 나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들려주는 것이 도리 같았다. 그러나 손가락은 쉽사리 다이얼 버튼 위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지는 다른 업무와 이미 지쳐버린 하루의 끝자락에서, 나는 모든 것을 그저 미루고 싶었다. 지금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혹시라도 엄마가 나의 피곤한 기색을 알아챌까 괜히 걱정되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휴대폰은 침묵 속으로 잠겨들었고, 나는 결국 ‘내일 다시 전화하면 괜찮을 거야’라는 막연한 위안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내일은 오늘보다 여유로울 것이고, 더 따뜻한 목소리로 안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 자신에게만 통용되는 변명이었다.

내일은 그렇게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휴대폰은 다시 울렸다.

✍️ 글쓴이: 이승훈 | 수필가 | [email protected]

ⓒ 2026 layer-hub.com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