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담담한 말

엄마의 담담한 말

그날 저녁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된장찌개와 몇 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숟가락과 젓가락이 오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조용히 갈랐습니다. 언제나처럼 아빠는 밥그릇에 코를 박고 드셨고, 엄마는 조용히 반찬을 집어 제 밥 위에 놓아주셨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하루의 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저녁이었으며, 창밖으로는 어둠이 깔리고 멀리서 희미한 자동차 소리가 들려오는 고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식탁 위 불쑥 나온 말

엄마는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으시더니,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사람처럼 나지막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내가 너무 힘들어지면, 정말이지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면, 그때는 요양원을 좀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순간 찌개를 뜨던 내 숟가락이 허공에서 멈췄고, 그릇 가장자리에 부딪치지 않은 숟가락 끝은 미세하게 흔들렸으며, 식탁 위에는 정체 모를 무거운 침묵만이 가득 내려앉았습니다. 아빠는 아무 말씀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밥만 드셨고, 엄마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며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듯 그 말을 덤덤하게 내뱉었습니다. 따뜻하게 느껴지던 된장찌개의 온기가 갑자기 사라진 듯 혀끝이 시큰거렸고, 밥알이 목구멍으로 제대로 넘어가지 않아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현실적인 엄마의 시선

나는 무의식적으로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엄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직 정정하신데.” 하고 조금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내 반응에 놀라거나 감정을 내비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매우 차분하고 현실적인 목소리로 나의 말에 되받아치셨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나이도 있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언제까지 자식들한테만 기댈 수는 없지 않니.” 그 말씀과 함께 엄마는 마치 내 의견을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다시 밥을 뜨셨고, 김치 반찬을 하나 집어 드시는 모습에서는 어떤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빠는 헛기침을 한 번 하셨으나, 그 외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식사를 이어가셨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그저 밥그릇만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식탁 위에는 아까보다 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고,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마저 조심스러운 밤이었습니다.

밤늦도록 떠오르던 그 표정

그날 밤늦게까지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으며, 창밖에서는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이 방 안을 잠깐씩 비추었습니다. 희미한 달빛이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와 방 한구석에 작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나는 그 그림자 속에서 엄마의 얼굴을 자꾸만 떠올렸습니다. 저녁 식탁에서 요양원 이야기를 꺼내던 엄마의 표정은 슬픔이나 체념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오히려 앞으로 닥쳐올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그것에 가까웠습니다.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눈빛은 흔들림 없이 고요했으며, 그 모습에서 나는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단단하고 현실적인 엄마의 또 다른 면모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고요한 방 안에서, 엄마가 김치 한 조각을 집어 드시던 그 손길마저도 선명하게 재생되는 밤이었습니다.

새벽녘 희미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바깥은 아직 어두웠으나 창문 너머로 희미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습니다. 동이 트자마자 엄마는 여느 때처럼 부엌으로 향하셨고, 익숙한 냄비 소리와 함께 아침 식사 준비가 시작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곧이어 부엌에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퍼져 나왔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습니다.

✍️ 글쓴이: 최윤아 | 에세이 작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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